최종보고서비석마을 탐방 보고서 [서예림]

I. 답사계기

비석마을이라는 곳에 대해 처음 들어 보았을 때에는 단순히 동화적이고 아름다운 데이트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매체를 통해서 다시 알아보니 우리나라의 역사와 아픔이 숨어져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피란의 수도’라고 불리는 부산의 비석마을은 한국 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급증해 거주할 장소가 부족하게 되자 당시 일본인들의 무덤 위에 피난민들이 집을 지은 장소이었습니다. 이렇게 아픈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음에도 인터넷 블로그에서 글로만 접하다 보니 그 사실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직접 방문하여 장소를 직접 보고 마을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단순히 매체를 통해 알아본 것보다 훨씬 더 깊이 있고 자세하고 생생한 사실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비석마을과 불과 걸어서 5분 거리인 최민식 갤러리에서는 그 시대 사람들의 진정한 삶의 모습을 사진을 통해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II. 답사장소

a. 비석마을

아미동 비석마을은 일제강점기 부산 거주 일본인 공동묘지가 있었던 장소이었다. 초기에는 일본인 공동묘지는 아니었습니다. 용두산 북쪽 복병산에 있던 일본인 공동묘지가 1905년 북항 매립을 하면서 토석채취 때문에 아미동산 19번지로 이전된 공동묘지가 아미동 비석마을이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으로부터 해방되던 날 부산 거주 일본인들도 한국사람들에 봉변을 당할까 급 일본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5년 후, 6.25전쟁이 발발하자 남으로 피난민들이 몰려들었으며, 중공군이 개입으로 인해 1.4후퇴가 시작되자 서울과 전국각지는 물론 이북동포들까지 부산으로 몰려들었습니다. 피난민들은 우선 잠잘 곳이 제일 시급했습니다. 부산인구가 2배가 되었으니 당연히 잠잘 곳이 있을리 없는 상황이 되자 부산 임시정부와 임시정부청사가 있고 뭐니뭐니 해도 국제시장이나 자갈치시장이 가까운 곳에 먹고 자고하는 집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잠 잘 곳이 제일 시급했던 피난민들은 아미동 일본인 공동묘지 위에 판잣집을 지었고 비석마을은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피난민들이 찾아든 곳이 아미동산동네였습니다. 일본인공동묘지가 남아있어 한사람 두 사람 들어와서 비석과 비석을 이용해서 천막을 치고 거주하면서 자갈치시장에서 생선 상자와 널빤지 천막 등을 구해서 집이라는 곳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무덤 위에 지으려고 하니 축대도 비석을 이용하고 담벼락도 비석을 썼고, 구들장도 좌대를 이용하여 움막을 지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b. 최민식갤러리


최민식 갤러리를 살펴보기 전 최민식이라는 인물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민식은 한국 사진예술 1세대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리얼리즘 사진의 독보적인 장인이다. 최민식 작품의 가장 중요한 대상은 바로 인간이었습니다. 5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그는 오직 인간을 화두에 두고 사진촬영을 했습니다. 그가 출판한 [인간-최민식 사진 50년 대표선집]을 보면 그가 평생 찍은 인간을 통해 한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에 대해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좋은 자료입니다. 해당 사진첩은 인간의 현재와 과거를 연결해주는 통로의 창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최민식은 가장 낮은 위치에 놓여져 있는 사람들을 촬영하며, 그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의 사진 하나하나는 기성세력의 반성을 촉구하였으며 이로 인해 끊임없는 고문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최민식 갤러리는 그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담긴 뜻깊은 박물관이었습니다. 사진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모든이의 심금을 울리는 사진들로 가득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사진]젖먹는 소녀 : 짦은 머리만 보고서는 남아로 착각할 수도 있지만 위생과 외모를 동시에 신경 쓸 겨를이 었었기에 머리를 짧게 잘랐다고 했습다. 그 사진은 누이가 생선장사를 하시는 엄마에게 동생을 업고와 젖을 먹이는 모습인데 아이는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양손으로 젖을 들고 허겁지겁 젖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손에서 비린내가 날까봐 뒷집을 지고 힘겹게 젖을 먹이는 모습에서 모성애를 가슴 깊숙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III. 느낀점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책무이다]

부산 해운대, 자갈치 시장 등 부산은 날로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비석마을은 사람들로부터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마을 버스를 이용하고 있는 분들을 보니 모두 노인이었고 이 아픈 역사속 마을에 살고 계시는 분들의 대부분도 분가한 노인이라서 곧 폐가 위기사실을 통해 비석마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은 기억의 동물입니다.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문화재를 보존하고 알리는 것은 학생이 가져야할 책무와 같습니다. 최민식 갤러리의 사진은 과거를 현재의 우리에게 전달합니다. 사진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이음새 역할을 하는 것처럼 비석마을에 대한 역사를 전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가 사라져 갈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는 것은 일본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비석마을 역사 전파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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