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보고서비석마을/최민석 사진갤러리 탐방 보고서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문화’마을이라고 불리는 이름에서 생각하였던 그림과는 정반대라는 것이 인터넷 사전조사 중 느꼈던 이곳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모르고 보면 그냥 높은 곳에 세워진 집들 같아서 ‘비석문화마을’이라고 명시해 둠에도 불구하고 비석을 그냥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거의 모든 골목마다 땅바닥에 비석이 놓여져 있었고 시멘트처리도 벗겨져 비석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며 어딘가 이상한 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벽 중간중간에도 박혀져 있는 비석을 보며 우리나라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의 흔적이 콱 박혀져 지울 수 없는 흔적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심지어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은 그 애환에 현실감을 더해 갔다.

그저 화면으로 사전조사를 하며 느꼈던 비석마을의 애환과는 실제로 보고 느낀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이 험난한 길을 좁은 골목 따라, 급한 경사를 올라가며 걷다 보니 힘들고 불편하다는 느낌이 들어 그 사람들의 삶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아마도 사투리(갸가, 머스마) 를 쓰시며 직접 비석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해석해주시는 분의 직접적인 설명이 함께 있어서 많은 차이점이 느껴졌던 것 같다. (‘ain’t I a woman’ 작품 사례 참고 - dialect) 외국인들이 이 비석문화마을에 와서는 직접 험난한 골목을 걷고,  영어 또는 한국어 설명을 들으며 어떤 느낌을 받을지 생각하니 조금 더 효과적인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설명해주시는 분이 여길 어떻게 알고 보러왔냐고 질문하시는 데에서, 나는 그저 진로와 연결 지어 우리나라 역사를 좀 더 알아보고자 왔다 하더라도 다른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들은 이에 관심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사진을 찍다 느낀 것인데 정말 똑같이 생긴 비석사진만 여러 장이였기에 큰 볼거리보다는 세세한 역사를 알아야 그제서야 무언가 알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담은 산물이기에 비석’문화’마을이라는 이름이 제격이라고 정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사진으로 담아 오신 최민식 사진작가님이 있었다. 나 역시도 사진을 좋아하고 자주 찍기때문에 더욱 와닿는 것이 컸다. 사진의 사용처, 목적에 맞는 사진 등만 생각해왔던 나와는 달리, 휴머니즘에 기반하여 가식적인 것을 찍지 않고 낮은 곳으로 그분들의 모습을 담고 진정한 나눔을 실천하길 비라셨다. 그렇기에 이분의 사진을 보았을 때 그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더욱 의미가 있고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사진 속 사람들의 얼굴은 무표정이더라도 하나같이 살아내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듯하다.

이 사진들을 보니 예전 박정희 정권 때 왜 이 분의 사진을 배척하였는지 알 법도 하였다. 경제성장에 집중하며 세계속에서 다시금 일어나려 하는 당시의 우리나라에게는 이 사진은 감추고 싶은 부분이며 지우고 싶은 역사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작가님의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에도 빈부격차는 존재하였고 이토록 낮은 곳의 모습은 감추려 했다면 감춰졌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면 위로 끌어올려야 하는 이유는 불의에 대한 고발, 어둠에 대한 규탄이였을 것이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간첩으로 몇 번 의심을 받으셨다면 지쳐 그만둘 법도 한데 가난한 이들의 삶을 담는 것을 멈추지 아니하셨다.

우리가 직접적인 언어로 알 수 있는 것은 이 최민식 사진갤러리의 유품전시관에 있는 작가님 에세이가 있었다. 이제는 사진 위에 제목도 떼어낸 상태에서 직접적인 언어,글이 없지만 여전히 사진속 사람들의 비언어적인 표현을 통해 작가님의 언어, 이 사람들의 언어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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